영화를 본 지 시간이 조금 지나 리뷰하는 건데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대사가 있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1. 감독/출연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헤어질 결심'은 누구나 알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이다. 공동경비구역,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등 수많은 흥행작을 거친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플롯이 남성적인 경향이 있고 남자들이 훨씬 좋아하는 영화였던 것 같다. 헤어질 결심도 사랑을 다룬 영화지만 그런 부분들이 분명히 느껴졌다.
두 주연 배우는 박해일과 탕웨이다. 두말이 필요없는 각 나라의 정상급 배우들이다.
2. 줄거리
자일을 타고 암벽을 오르다가 암벽 정상에서 떨어져 사망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기도수'이고 나이는 예순 살, 소지품마다 이니셜을 새기는 버릇이 있다. 그의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가 바로 '해준(박해일)'이다. 기도수의 영안실에 나타난 그의 아내는 '송서래'라는 이름을 가진 중국인이었다. 한국어가 서툴다고 하지만 꽤나 유창하게 구사하는 송서래는 남편의 죽음에 전혀 동요되지 않는다. 게다가 '마침내 남편이 죽었다'라는 말을 남겨 현장의 형사들을 의문에 빠뜨린다.
이어서 해준은 서래를 신문실로 데려가 신문을 한다. 두부열상, 즉 머리통이 깨져서 죽었다는 말에도 서래는 담담하기만 하다. 게다가 '하는대로 운명했다', '마침내 죽었다' 등의 말을 남겨 그녀를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말을 하면서 웃기까지 하는 서래였다. 재밌는 점은 해준은 이미 그녀에게 호기심과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멘트나 행동이 결정적이진 않지만 분명 이건 감독이 의도한 바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를 의심하는 후배 형사 수완(고경표 분)의 말에 해준은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거야.'라고 변호하는 시점부터였던 것 같다.
해준과 서래의 신문은 매일 이어진다. 남편이 그녀를 학대한 사실, 그녀가 저항해온 사실, 그리고 알리바이 등이 하나씩 드러난다. 그런데 영화를 감상하는 우리의 시선은 그런 사실관계에 주목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해준의 결혼반지를 바라보는 시선, 해준이 일식집 오마카세를 도시락으로 싸와서 신문실에서 데이트하듯 점심을 함께하는 장면 등이 시선을 끈다.
해준은 그녀의 집 근처에 잠복하며 그녀의 동태를 살핀다. 며칠 간 그녀를 살피는가 싶었으나 오히려 그녀에게 발각되고 만다. 그녀를 관찰할수록 수상한 행동은 이어지고 그럴수록 해준의 호기심은 호감으로 변해간다. 해준은 서래를 미행하며 아내에게 비밀이 생긴다. 아내에게 말하지 않고 서래의 집을 찾아가고 서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행은 점점 밀회에 가까워지고 아내와의 심리적 거리는 멀어지고 서래와는 가까운 사이가 된다. 선을 넘을 듯 말듯한 아슬한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박찬욱 감독의 앵글이 굉장히 예술적이다.
서래의 많은 것을 알게된 해준은 단순히 남편에게 학대당하던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되던 서래가 보통 여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서래의 손에 두텁게 박힌 굳은 살과 서래의 알리바이였던 독거노인 봉사에서 발견한 허점 등은 해준으로 하여금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게 만들었다. 해준은 서래가 사용하던 두 번째 폰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한다. 남편이 죽던 날 138층 높이를 올라갔던 운동기록이 남아있던 것이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해준이었지만 그녀를 사랑했다는 고백을 털어놓으며 그녀와 이별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절반이다. 뒷부분은 직접 보길 추천한다.
3. 평가
심각한 상황과 분명히 대조되는 박해일과 탕웨이의 연기는 호감있는 남녀의 데이트 느낌을 충분히 연출했다. 살인사건의 대질신문이라는 상황과 그런 분위기의 모순. 여기에 더해진 박찬욱 감독의 신선한 앵글 시도는 처음 느껴보는 감각을 전달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불륜 영화였다면 인물의 도덕적 해이를 비난하거나, 내 주변 사건들과 영화를 비교해본거나 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감상만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장면들 속에서 나는 박해일의 불륜에 비난과 응원을 동시에 하며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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