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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리뷰

루리 작가의 <긴긴밤>

by 포리_ 2023.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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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고 동화책을 좋아하는 회사원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틈틈이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고 동화를 쓰고 그림을 그렸고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나는 평소 동화책을 많이 접하는데 긴긴밤은 대상이 부끄럽지 않은 책이다. 긴긴밤은 구성과 스토리 자체로도 문학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며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꾹꾹 눌러 담은 선물하고 싶은, 선물받고 싶은 책이다.

 

2. 줄거리

 가족 잃은 코끼리를 보호하는 코끼리 고아원에 살고 있는 조금 다른 생명체, 노든은 코뿔소이다. 코끼리의 뿔과 튼튼한 다리를 보며 자신도 조금 다를 뿐 코끼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노든은 고아원을 나가 바깥 세상으로 나가보기로 한다. 

 

 밖에서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코뿔소 무리를 발견한 노든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희고 아름다운 뿔을 가진 코뿔소를 만나 딸을 낳게 된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행복도 잠시 어느날 들이닥친 커다란 트럭과 인간들의 총은 불을 뿜으며 아내와 딸을 무참히 살해한다. 모든 것을 잃고 넋도 잃고 남겨진 노든은 동물 보호 단체에 구조되어 치료되고 파라다이스 동물원으로 옮겨진다.

 

 익숙하다. 처음 코끼리 고아원처럼. 가장 소중한 걸 가졌다가 잃은 노든만 달라졌을 뿐이다. 매일 악몽을 꾸는 노든에게 똑같이 생긴 앙가부라는 코뿔소가 다가와 친구가 된다. 행복한 이야기를 하면 악몽을 꾸지 않을 거라는 앙가부와 함께 인간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두 번째 철조망, 동물원을 탈출하기로 한다. 그러나 탈출 전날 앙가부는 코뿔소의 뿔을 노리는 사냥꾼들에게 습격당해 목숨을 잃고, 노든이 표적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동물원에서 뿔을 잘라간다. 

 

 한편 동물원에서는 버려진 알이 하나 발견되었고 펭귄인 치쿠와 윔보가 처음 보는 알을 품어보기로 한다. 알을 품어보는 것이 처음이라 서툴었지만 태어날 새끼를 기대하며 지극정성으로 알을 돌보았다. 적개심으로 가득한 노든과 별개로 파라다이스 동물원의 평화는 이어지는 듯 했으나 어느 날 갑작스런 폭발에 모든 것이 뒤바뀐다. 공습이었을까, 사고였을까. 수많은 동물과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간 폭발은 윔보의 생명도 앗아간다. 그렇게 펭귄 치쿠와 알, 흰바위코뿔소 노든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사막을 지나고 초원을 지나 바다가 나타날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치쿠는 한 순간도 알 돌보기를 소홀하지 않았고 기진맥진해 쓰러지는 날이 많았다. 푸석푸석해진 펭귄 치쿠의 피부, 척박한 환경은 치쿠의 생명력을 갉아먹었고 어느 날 아침에 치쿠는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다. 계속된 비극에도 노든은 알을 지켜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긴긴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알에서 나는 깨어났다. 새까만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 아래에서 노든과 나 둘 뿐이었다. 나와 노든은 공격을 피하기 위해 늘 안전한 곳을 찾았고 죽을힘을 다해 살아남았다. 새끼 펭귄은 코뿔소에게 먹을 수 있는 열매, 독이 든 꽃, 위험한 상황을 피하는 법을 배웠다.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인 둘은 그렇게 의지했다. 노든의 마음에 깃든 분노와 절망은 깊어서 '나'가 가져다주는 새로운 희망으로 되돌리기 힘들었다.  노든은 모든 걸 알려주고 나를 보살폈다. 인간들의 습격은 또다시 이어졌다. 큰 상처를 입고 늘어진 노든은 이번엔 정말 마지막인줄 알았는데 새롭게 나타난 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노든을 수습해 치료해주었다. 내가 바다에 갈 때까지 노든은 함께 해 주었다. 초록색 지평선이 있는 곳, 코뿔소의 바다 앞에서 우리는 작별했다. 

 

 '나'는 절벽을 기어올라 파란 세상에 도착했다. 두렵고 긴긴밤이 이어지는 여정이지만 나는 발을 내디뎠다.

 

 

3. 생각해 볼 부분

 긴긴밤. 어떤 밤이 긴긴밤일까?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며 밤을 지새우는 밤은 시간이 느리게만 가고 도무지 아침이 올 것 같지 않다. 좌절과 실패에 신음하고 몸서리치는 밤은 다시 떠오를 태양이 사라진 것마냥 멀게만 느껴진다. 빠듯이 벌어 공과금을 내고 밀린 대출금과 이자를 걱정하며 자리에 누워 보는 캄캄한 천장이 긴긴밤이다. 우리의 날들은 긴긴밤으로 가득하다. 하루종일 통제당하면서도 밥 세끼가 주어지는 철조망 울타리가 간절한 순간도 찾아온다. 하지만 밤에 누우면 드는 의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철조망 울타리를 걷어차고 긴긴밤이 이어지는 그 곳으로 향한다. 매일 반복되는 삶에서 치쿠와 온기를 나누며 앞으로 전진한다.

 

4. 잡생각

 이전에 해인사에서 만난 스님이 '나에 대한 물음'이 지극해지면 출가하는 거라고 했다. 부모, 형제, 사랑, 배신, 금전, 실패 등의 고통이 지극해서 출가한 스님들도 결국 강을 건너며 나에 대한 물음이 지극해진다고 했다. 화두를 하며, 법문을 읽으며, 참선에 들며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스님들의 긴긴밤은 어떤 빛깔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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