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영화 리뷰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by 포리_ 2023. 1. 8.
반응형

1. 금목걸이 이야기

 

 남편을 잃고 살아가는 가난한 여성이 있었다. 그 여성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자신의 건강도 나빠져 당장 먹고 살 길이 막히게 되었다. 그래서 집에서 가장 값나가는 보석 목걸이를 딸에게 건네며 보석상에 팔아 돈을 마련해 오라고 했다. 큰 사파이어가 박힌 금목걸이었다.

 딸은 가장 좋은 평판을 가진 보석상에 가서 목걸이의 시세를 감정해달라고 했다. 보석상의 대답은 의외였다. 사겠다 말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금값이 떨어졌으니 팔지 말라는 것이었다. 대신 보석상에 마침 사람이 필요하니 처녀더러 출근을 해서 돈을 벌어보라고 했다.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보석 감정 보조였다. 당장 생계가 어려웠던 그녀에게 그 일자리는 절실한 것이었고 충실히 자신의 일을 해나갔다. 그녀는 그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쯤 보석상이 다시 보석목걸이를 가져와서 감정해보자고 했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 보석목걸이를 꺼내 보았고 스스로 감정해보았다. 놀랍게도 목걸이의 사파이어는 아주 낮은 등급이었고 금도 도금에 불과했다. 보석상에 돌아간 그녀는 왜 진작에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보석상은 말했다. 그 때 말해줬으면 믿었겠냐고. 아마 믿지 않거나 다른 보석상 몇 군데를 가보고 좌절했을 것이라고.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처녀를 도와준 보석상의 따뜻한 마음과 현명함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처녀의 변화이다. 

 무언가를 해보기 전에 나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해보지도 않은 그 일을 했을 때 결과가 어떨지, 기회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더 나은 일은 없는지, 과연 그 일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고민하며 시간만 죽인다. 한두 걸음이라도 떼고 나면 그때의 나는 분명히 달라져 있을 것인데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다. 큰 돈이 아니라 노력과 시간만 드는 일이라면 일단 해보면 된다. 하고 나서 돈을 얻지 못하더라도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능력을 아주 싼 값에 얻었을 테니까.

 

2. Nothing special

 

 숲에 사는 박새가 비둘기에게 눈송이 하나의 무게가 얼마인지 아냐고 물었다. 비둘기는 무게가 거의 없다고 대답했다. 박새는 말했다. 눈이 내리는 날이었어. 내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옆의 전나무를 지켜보고 있었지. 할 일이 없어 가지 위에 내리는 눈송이들을 세고 있었지. 3,741,952개까지 세었는데 그 다음 눈송이가 내려앉는 순간 나뭇가지가 부러졌어.

 우리가 겪는 일들 하나하나는 눈송이이다. 무게도 거의 없고 금새 녹아서 사라질 눈송이들을 우리의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고 있는 건 누구인가? 따지고보면 큰 일은 없다. 큰 일이라고 내 마음에서 수백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나가는 것뿐이다. 지금 이 순간 냉장고에 있는 남은 반찬과 밥을 비벼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 큰 호흡을 쉬고 마시며 작년에 쌓아둔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나가서 달릴 수도 있고 더 격하게 움직여서 몸을 지치게 만들 수도 있다. 한밤중에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음악을 틀어놓고 작게 흥얼거릴 수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걱정인가.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가지위의 수천만개의 눈송이들. 가만히 두면 녹아 없어질 것이다.

 

3. 수도승 이야기

 한 수도승이 제자와 탁발을 나섰다. 어두워진 들판에 그들은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야 했고 불이 켜진 오두막을 발견해 들어갔다. 하룻밤 신세를 청하니 집주인이 흔쾌히 승낙하며 따뜻한 음식을 대접했다. 가난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대접에 제자는 크게 감동하였다. 오두막 주위는 말 그대로 텅 빈 들판이었고 제자는 문득 이 가족이 어떻게 생계를 꾸리는지 궁금해졌다. 집주인은 집에 늙은 암소 한 마리가 있어 우유를 짜거나 치즈를 만들어서 생활한다고 했다. 길을 떠나며 스승은 제자에게 암소를 절벽에서 밀어버리라고 했다. 죄책감은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제자가 그 오두막이 있던 곳으로 다가갈수록 과거의 죄책감이 살아나 마음이 괴로워졌다. 그런데 그 장소를 찾은 제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따. 허름한 오두막이 있던 곳이 아름다운 집과 정원으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집주인에게 물으니 '유일한 생계수단'이던 암소를 잃어버린 후 생계수단이 필요해졌고 살아남기 위해 어떤 것이든 닥치는대로 배웠던 것이다. 각종 밭농사와 식재를 배웠다고 한다.

 내가 지금 절벽으로 밀어뜨려야 할 암소는 어떤 것인가? 안정적인 내 직업인가? 이 직업을 가지고 5년을 열심히 일하면 나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여전히 암소 한 마리일 것인지 새끼라도 쳤을 것인지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나의 행동을 제약하는 집과 대출일까? 자유롭고 새로운 도전의 발목을 잡고있지는 않는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늙은 암소를 밀어버려야 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