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순례 씨는 이 책의 주요 인물이다. 또한 순례주택이라는 건물을 적수공권으로 올린 인물이다. 소설의 배경을 보면 분명히 인물들이 살아가는 곳은 대한민국 서울이다. 대체 목욕탕 때밀이를 하던 순례 씨가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을까? 순례 씨는 세신사지만 프로 의식을 가지고 손님들의 때를 밀고 마사지를 하여 아주 좋은 평판을 얻었다. 그래서 자신의 시급을 올리고 장기간 일을 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초등교사 월급의 2배 정도를 벌었고 10년을 모아 모퉁이 양옥집을 샀다고 한다. 그 앞에 지하철 거북역이 들어서게 되자 순례 씨는 집의 일부를 떼이고 큰 보상금을 받았다. 그 돈을 받아 올린 다세대주택이 순례주택이다.
순례 씨는 무엇 하나 거저 얻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필요 이상의 돈은 필요 없다고 여긴다. 순례 주택에서 세입자들에게 받는 월세도 매우 저렴하다. 주변 시세에 비해 너무 저렴하니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주인공의 이름은 오수림이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집에서는 천덕꾸러기이다. 성적이 나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어린 시절을 집을 떠나 순례주택에서 보낸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나 오수림에게는 오미림이라는 언니가 있다. 언니는 질투심이 많고 이기적이라 내가 태어나고 엄마를 더 힘들게 했다. 안 그래도 산후 우울증에 빠져있던 엄마는 나를 감당할 수 없었고 친정 아버지에게 나를 맡겼다. 친정 아버지이자 나의 외할아버지는 순례 씨의 남자친구이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각자 사별하고 수십 년을 재혼 없이 지내왔다. 외할아버지는 전기 기사로 벌어먹고 사는 터라 나를 봐줄 여유가 안 됐고 여자친구인 순례 씨에게 나를 맡기게 된다. 나의 핏줄이자 가족이 살아가는 곳은 외할아버지의 소유이다. 장인어른의 집에 나의 아빠와 엄마는 함께 들어갔고 그 부담을 이겨내지 못한 외할아버지는 집을 나가 여자친구인 순례주택 201호에 살고 있었다. 말하자면 오수림은 외할아버지의 여자친구 집에 맡겨진 셈이다.
남에게 의지하고 이기적이고 성적, 돈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우리 가족, 어쨌든 자신의 힘으로 살아보려 하는 인간적인 순례주택 사람들 사이에서 오수림은 후자에 강한 끌림을 느낀다. 때탑(때 밀어서 번 돈으로 지은 건물이라는 뜻으로 순례주택을 부르는 별명)에서 자라는 동안 오수림은 정말 반듯하게 성장하지만 자신의 핏줄을 가족이라 여기지 않게 된다.
나 오수림의 가족이 살아가는 원더 그랜디움의 집값은 나날이 치솟고 엄마는 콧대를 높이며 순례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빌라 거지라고 업신여긴다. 아빠는 시간 강사로 버는 돈이 빠듯하여 늘상 가족에게 돈을 얻어 쓰는 형편인데도 출신 대학으로 사람의 등급을 나누고 초면에 무례를 저지르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던 우리 가족에게 날벼락이 닥친다. 이전에 외할아버지가 투자했던 태양광 회사가 사기로 밝혀지며 모든 재산이 압류되고 경매에 넘어가버린 것이다. 살고 있던 집, 원더 그랜디움도 8억을 호가하던 집이었지만 경매로 넘어가고 우리 가족은 무일푼 신세가 된다. 생활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우리 가족은 매일 삶을 비관하고 새로운 집을 알아보지만, 눈만 높아져있고 능력은 없는 터라 좌절만 한다. 정말 먼 곳의 허름하고 좁은 집으로 이사가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았을 때쯤, 오수림의 가족은 순례 씨의 배려로 인해 순례 주택에서 살 수 있게 된다. 정말 다행이라고 기뻐하던 가족이었지만 이삿짐 싸고 새 집 청소를 할 때도 오수림 없이는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는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
순례주택에서의 우리 가족은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되는 존재였다. 안 그래도 시선이 곱지 않은 순례주택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굴다가 된통 혼나기 일쑤였다. 순례주택의 입주민인 홍길동(본명 이군자) 씨는 엄마를 골려주기 위해 시세가 20억이나 되는 순례주택의 후계자가 다름아닌 오수림이라는 거짓말을 한다. 실제로는 국경 없는 의사회를 위해 쓰이기로 법적인 절차가 완료되어 있었다. 엄마는 뒤늦게 순례 주택 사람들에게 공손하게 굴고 나에게도 전에 없던 대우를 해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사실이 새까만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한다. 엄
우리 가족은 그렇게 허영과 허울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완연한 순례주택 사람이 되어간다.
2. 생각하며 읽을 포인트
소설에서 엄마와 아빠는 서로 존댓말을 하는 금슬 좋은 부부이지만 남에게는 이기적이고 몰상식한 모습으로 대한다. 이런 엄마, 아빠의 모습은 대한민국에서 매우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이다. '가장 소중한 것은 내 옆의 가족이다'라는 아름다운 생각이 삶의 고달픔, 우리의 이기심과 만나 '우리 가족만 잘 되면 돼. 우리 가족만 아니면 돼'로 연결된다. 우리 아이들이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치는 것도 낯선 곳에서 온 것이 아니다. 남을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자 품격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실존인물로 환경운동가이자 2019년 노벨상 수상후보였다. 툰베리는 오수림, 오미림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자 이 소설의 내용이 우리 현실 그 자체라는 연결고리 역할도 해 준다. 이런 섬세한 디테일이 순례주택이 수작이라는 점을 부각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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